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리처드 닉슨 (문단 편집) == [[존 F. 케네디]]와의 비교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JFK Nixon.jpg|width=100%]]}}} || 닉슨은 합격했는데도 금전적 사정으로 입학하지 못한 [[하버드 대학교]]를 [[존 F. 케네디]]가 공부를 못하면서도 총장과 절친했던 아버지의 입김으로 들어간 경험 때문에 케네디를 상당히 경멸, 혐오했다.[* 케네디는 모교인 초트 고등학교 졸업 성적도 특권층만 다니는 엘리트 사립학교인 점을 감안해도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미국의 명문 사립 대학은 지금도 특권층의 입학이 수월한 편이기는 하나 이 당시는 대입에 연줄이 훨씬 노골적으로 작용했던 때였다.] 또한 어마어마한 부자 가문 출신인데다가, 젊고 잘 생기기까지한 케네디에 대해 큰 열등감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케네디에게 느꼈던 닉슨의 이 [[컴플렉스]]가 닉슨이 정계 입문 후 보여준 여러 무리수의 원인으로 보는 분석이 많다. 재밌는건 닉슨과 케네디의 정치 입문 시기는 1946년으로 같았고, 나이 차는 고작 네 살에 불과했다.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특권층 자녀로 자란 케네디는 진보적인 정책을 펼친 데 반해서 서민층 자녀로 자란 닉슨은 보수적인 정책을 펼쳤다. 출생부터 시작해서 대학입학이나 정계이력까지 모든 면에서 대조적인 두 사람이었다. 그리고 1960년 대선에서 양당 후보로 출마했다. 세세히 파고 든다면 그야말로 운명의 장난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둘의 악연은 길다. 닉슨과 케네디는 같은 1946년 중간선거에서 하원 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그리고 1947년 초선 의원끼리의 친목회에서 초선 의원들이 가벼운 정책 토론을 가질 기회가 있었는데, 하필이면 케네디의 상대로 맞붙은 사람이 닉슨이었다. 게다가 하원 의원 시절 닉슨의 의원 사무실은 361호실이었는데, 바로 옆방인 362호실은 케네디의 방이었다. 이 때문에 닉슨과 케네디는 처음에는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1953년 케네디의 결혼식에 닉슨이 하객으로 참석했을 정도. 둘은 점심까지 같이 먹을 정도로 친한 사이였고, 1959년에는 케네디가 만약 자신이 대선 후보로 나서지 않는다면 닉슨에 투표할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둘의 사이는 각별했다. 그러나 케네디는 경선에서 승리해 본선에 나서 닉슨과 붙게 되었다. 그렇게 모든 면에서 반대인 두 대통령이었건만, 둘 다 임기를 제대로 마치지 못했다는 게 미국 현대사의 비극이자 아이러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